"강한 건축 가고 약한 건축의 시대 온다"

입력 2022-11-08 18:02   수정 2022-11-09 00:17


“20세기 건축이 자연을 파괴하는 ‘강한 건축’이었다면 앞으로는 자연과 어우러지는 ‘약한 건축’의 시대가 올 겁니다.”

일본 현대건축의 거장 구마 겐고(68·사진)는 ‘미래 건축의 방향’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8일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열린 특별강연에서다. 이번 강연은 리움미술관의 기획전 ‘구름산책자’ 연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열렸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거대한 척추 모양 조형물 ‘숨(SU:M·2022)’이 바로 그의 작품이다.
“강한 건축은 지속 불가능”
구마는 ‘자연과 소통하는 건축가’로 불린다. 콘크리트, 철 등 인위적인 소재를 거부한다. 대신 나무와 돌, 종이, 천 등을 쓴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서다. 전통적인 동아시아 건축양식에 자연친화적인 재료를 접목해 ‘지속 가능한 건축’ 패러다임을 만든 그는 지난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에 뽑히기도 했다.

그는 건축가로서 자연과 만난 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1990년대 일본 경제에 낀 거품이 터지면서 대도시 건축 일감이 사라지자 10년 동안 지방을 돌아다녔다. “시골에서 크고 작은 건축 일을 하면서 숨은 장인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도쿄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일하더군요. 콘크리트 대신 그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흙과 나무를 쓰는 등 자연에 스며드는 건물을 짓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이런 경험은 구마에게 ‘약한 건축’ 아이디어를 안겼다. 그는 지난해 출간한 자서전에서 철과 콘크리트로 만든 인공적·환경파괴적인 건축을 ‘강한 건축’으로 정의했다. 반대로 자연 친화적 소재를 사용해 환경 파괴를 최소화하는 건축은 ‘약한 건축’이라고 했다. 그는 “30년 전만 해도 강한 건축 방식으로 세운 건물은 ‘발전의 상징’으로 대접받았지만 환경 오염이 생존의 문제가 된 지금은 아니다”고 했다.
자연, 그 자체가 된 건축
구마는 지속 가능한 건축의 단초를 재료에서 찾았다. 그는 건축물을 만들 때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그대로 쓰고, 다시 자연에 되돌려줬다. 구마는 일본 유수하라 마을에 만든 목재 다리를 예로 들었다. 나뭇조각에 틈을 만든 뒤 서로 끼워넣는 방식으로 지었다. 못이나 접착제는 쓰지 않았다. 나무도 그 지역에서 나는 것만 사용했다.

그는 “다른 지역이나 외국에서 목재를 들여오면 엄청난 탄소가 배출된다”며 “나무를 재료로 쓴다고 모두 ‘친환경’인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구마는 이런 방식으로 일본 곳곳에 목재 건축물을 여럿 지었다.

때로는 애써 완성한 건축물을 허물기도 했다. 오로지 자연에서 얻은 재료만 썼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날 구마와 함께 강연을 맡은 옥용식 환경과학자는 “철, 콘크리트 등 무기물 소재는 한번 만들면 잘 해체되지 않지만, 유기물 소재인 나무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 분해된다”며 “이런 점에서 구마의 작품은 ‘자연에 가까운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이런 그의 건축철학을 높이 사 2021년 도쿄올림픽, 2025년 오사카엑스포 등 굵직한 국제 행사의 대표 건축물을 맡겼다.

구마의 작품세계는 건축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번 리움미술관 전시를 위해 거대한 설치조형 작품을 만들었다. 오염된 공기를 흡수하는 기능을 가진 84m 길이의 신소재 천을 종이처럼 접은 작품이다. 외모도 그렇지만 성능도 범상치 않다. 자동차 9만 대가 1년 내내 배출하는 오염물질을 흡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는 이 작품을 본 관람객들이 이런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앞으로 세상은 환경과 어떤 식으로 마주할 것인가. 그것이 우리의 과제다.” 전시는 내년 1월 8일까지.

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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